<산다는 것은>

신명기 8:2-3, 마태복음 6:9-12


한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는 수없이 많은 시련을 겪게 된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시련, 자기 계획과 목적이 벽에 부딪히는 데서 오는 시련, 사회 제도 속에서 겪는 시련 등, 이런저런 시련 속에서 실패하고, 꿈이 산산조각 나고, 인간관계가 엉망이 되어 마음에 근심과 괴로움을 안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경우엔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내가 부족하고 흠이 많지만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내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만 하나?’ 하소연하고 싶을 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이런 마라의 쓴물은 나 혼자만 맛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면 누구나 예외 없이 경험하게 되는 현실이다. 고통의 문제에 관한 한 예수님도 예외가 아니셨다. 높고 높은 하늘 영광의 보좌에서 말 밥통 속에 오시고, 헤롯의 잔인한 유아학살로 인해 아기 때부터 이집트로 피난을 가셨다. 목수의 아들로 자라며 집안일을 도왔으며 3년 공생애 기간 동안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박해와 모함을 당하셨다. 마침내 제자에게까지 배신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님께서도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그토록 힘겹게 사셨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기로 작정하고 택하신 백성들이 위기에 봉착하지 않게 사전에 미리 해결해 주실 수 있으심에도, 왜 때로는 고통과 시련을 허락하셔서 한계상황까지 경험하게 하시는가? 물론 그 이유가 낙원을 상실한 인간이기 때문이고 죄 된 인간이니까 그렇기도 하겠지만 신명기 본문에서 우리는 주목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8:3)

 

하나님께서는 앞서가시면서 모든 위기를 막아주실 수도 있고, 사전에 해결해 놓으실 수도 있지만, 위기에서의 해결책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들게 하기 위해 그런 시련과 연단을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신명기 815, 16절 말씀을 보라.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어떤 위기와 한계상황 속에서도, 스스로를 낮추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그 입에서 나오는 약속의 말씀만을 붙들고 살게 해서, 결국엔 네게 복을 주려하심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어떤 시련과 위기와 한계상황 속에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사는 자는 복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있다. 홍해를 가르고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는 여호와 닛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도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를 마치신 후 사탄에게 시험을 당하셨을 때, 신명기 83절을 인용하셔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4:4)

 

살다 보면 우겨쌈을 당할 때가 있다. 답답한 일, 아니 절망적인 상황에 놓일 때도 있다. 핍박받을 때도 있고, 쓰러지고 자빠질 때도 있다. 하지만 믿음은 이기지 못할 것이 없다. 그리고 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는 것만으로도 힘들지만, 극한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라. 어떤 환경, 어떤 형편, 어떤 처지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라. 마침내 합력하여 선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사는 것 같이 사는 삶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을 승리케 하는 성령의 검이 됨을 믿으라.